우리 수도회 역사

창립과 관련된 초기 역사는 창립자

암라인 신부의 영성에서 - 클릭

총원 행정체 조직

- 총 5명 : 총장, 부총장, 참사위원 3명 

- 총원 행정체 임원 :  총비서, 총당가, 회연혁,  선교당가

1980 이래 총원 행정체들

 

회역사 간략

독일의 보이론 수도원의 수사신부 이셨던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님이 1884년 선교 수도회로 허가를 받고 독일 남부 레겐스브르크의 라이헨바흐를 거쳐 샹트 오틸리엔 지역에서 남여 수도회을 시작하였고

우리회의 창립 기녀일인 9월 24일은 1885년 4분의 수녀님이 동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나기 전에 로마 깜포쌍또 자비의 마리아 경당에서 첫서원을 발하신 날입니다.

동아프리카에서 초세기의 여러분의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지만 지속적인 지원자들을 보내 주신 하느님의 은총은 그 위험 속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모원으로 부터 수녀님들을 파견할 수 있게 하였고 우리회의 선교사명의 단단한 뿌리를 탕가니카 (현재 탄자니아)에서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1887~ 1908 년 초 페라미호, 은단다 프리오랏의 기초가 놓였으며

 

그 후 남아프리카로도 진출(1920년대)하여 윈드훅 프리오랏의 기초를 놓고 2000년 문을 닫은 잉카마나 프리오랏도 설립(남아프리카 정부의 정책에 따라 운영하던 병원과 학교를 본방인 수녀회에 넘겨줌)하게 됩니다.

윈드훅 프리오랏은 1990년대 두차례에 걸쳐 오시쿠쿠의 베네딕틴 수도회에서 우리와 통합을 원하는 수도자들을 받아들였다.

아프리카 보다 다소 진출이 쉬웠지만 무척 가난한 브라질, 남 아메리카에서 북쪽의 올린다와 남쪽의 소로카바에 각고의 희생으로 각각 본토민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교육 사목을 시작하여 1903년 올린다 프리오랏과 1905년 소로카바 프리오랏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얼마지나지 않은 1906년 남쪽 아시아에 가톨릭 국가였던 필리핀에서 교육활동을 시작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존경받는 훌륭한 학교 사도직의 기틀을 잡게 되어 마닐라 프리오랏이 설립되는데 2015년 본원을 마닐라에서 타가이타이로 이전하지만 명칭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후 일본으로 진출하려는 시도가 좌절되었지만 한국 원산에서 1925년 프리오랏을 세우고 모원에서 파견된 4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진출하여 바로 시작된 양성소로 입회한 한국인들과 함께 의료, 교육, 교리교육등의 사업을 힘있게 펼치게 됩니다.

6.25의 발발로 수녀원이 해산되고 덕원 신부,수사님들과 원산 수녀원 수녀님들은 많은 고초를 겪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순교의 영광을 받아 피를 흘리게 됩니다.

 

1973년 동아프리카의 페라미호 프리오랏에서 몇몇 선교사 수녀님들이 중앙아프리카 케냐 체송곳으로 파견되어 지역적으로 고립되고 의료, 교육등의 혜택이 전혀 없었던 원주민들을 위한 선교사업을 시작하였고 1987년 나이로비 프리오랏으로 성장합니다.

1951년 대구 신암동에서 남으로 피난 오신 수녀님들이 모원에서 재 파견된 선교사들과 함께 대구프리오랏을 시작하게 되고 그 후 1987년에는 이미 서울 지역에서 최초로 1976년 부터 천주교 상설 교육센터로 운영되던 상지회관 피정의 집,아리랑 언덕에 서울 프리오랏이 탄생합니다.

 

포르투갈에 있는 토레스 노바스 프리오랏은 가장 늦은 시기 2001 년에 설립되었지만 이미 반데 지역에서 1961 년 수녀원이 시작되었었고 1972 년에 프리오랏으로 성장했지만 곧 쿠데타가 일어나 공동체를 발타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 학교 양로원등을 새로이 시작해야 하였습니다.

1983 년 다시 스페인 마드리드 공동체 (스페인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마닐라 프리오랏의 선교사 수녀님들이 계심- 2016 년 현재)와 아프리카 대륙의 앙골라 (나미비아-윈드훅 프리오랏 이웃)를 관할하게 되는데 이렇게 대륙이 다르지만 포르투귀쉬 언어(스페인어도 매우 유사)로 하나의 프리오랏을 이루었습니다

 

앙골라 지역에서는 이미 1931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고 극심한 내전으로 피폐해진 1975-2000년대 이후까지 내전의 상처는 계속되고 있는데 2001년 토레스노바스 프리오랏이 시작되면서 하나의 지구로 통합 되었습니다. 우리회에서 현재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 지구는 에피파니아 베네딕틴이라는 소수 인원의 수도원이 우리 수도회에 통합되면서 그 지역에 있던 수녀원이 가까운 소로카바 프리오랏의 지구로 편입되면서 생겨난 지역입니다.

앙골라 지역에서는 이미 1931 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고 극심한 내전으로 피폐해진 1975-2000 년대 이후까지 내전의 상처는 계속되고 있는데 2001 년 토레스노바스 프리오랏이 시작되면서 하나의 지구로 통합 되었습니다. 우리회에서 현재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 지구는 에피파니아 베네딕틴이라는 소수 인원의 수도원이 우리 수도회에 통합되면서 그 지역에 있던 수녀원이 가까운 소로카바 프리오랏의 지구로 편입되면서 생겨난 지역입니다.

 

1953 년 모원에서는 총회를 거쳐 교회의 중심인 로마에 총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로마 근교 그로타 페라타를 거쳐 현재 로마 바티칸에서 기차로 한 정거장 떨어진 베빌락쿠아 (Bevilacqua 60, Roma, ITALIA) 에 총원의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1923 년 북아메리카 네브라스카주, 놀폭에 선교사들이 파견되고 지원자들을 받으며 수녀원이 설립(1923 년)되고 의료와 학교 사목을 중점으로 하였으나 현재 베네딕도 영성센터를 짓고 베네딕틴 영성 교육을 위주로하고 있습니다.

모원은 1904 년 현재 남독일 바바리아 주에 위치한 툿찡, 스탄베르크 호숫가에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많은 성소의 은혜와 선교사들 파견이 있었으나 역시 두차례 세계대전을 통해 큰 위기를 겪었고 그러나 선교 수도회의 모원으로서 서울 프리오랏을 제외한 모든 프리오랏에서 그 기초를 놓고 수도생활의 틀을 굳건히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고 선교 수도회의 모원으로서, 수도회의 어머니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불가리아는 두차례에 걸친 발칸반도의 치열한 전쟁 역사 속에서 결속된 독일과의 동맹국으로 1914 년 이 지역의 독일 이주민 농업기술자들의 아이들을 위한 교리등의 활동에 초대되어 수녀원이 시작되고 곧 프리오랏으로 발전하였으나 2 차 세계 대전으로 불가리아가 공산화되면서 독일 수녀들은 모원으로 되돌아 가야만 했고 남아있던 수녀들이 수녀원 건물을 정신지체인들을 위한 병원으로 정부에 제공하여 그들을 도우면서 비밀리에 침묵과 고통 속에 미션을 지속하다가 통독 이후 부터 1992 년에는 다시금 수녀들이 모원에서 파견되면서 현재까지 국제공동체로서 총원지구로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우간다 진자 공동체는 케냐와 이웃하면서 1993년부터 총원지구로 시작되었고 나이로비 프리오랏에 수련소를 위탁하고 있습니다.

독일 툿찡 모원 가까운 곳에 이웃하고 있는 하우스 베네딕은 1980년 초 선교지에서 평생을 사시다가 모국으로 말년에 돌아오신 수녀님들을 위해 세워진 공동체로 총원관할 분원입니다.

1996년 인도 남부 전통적인 카톨릭 우세지역인 케랄라에서 많은 소녀 지원자들을 받으며  시작되었으며 현재 총원지구입니다. 

1987 년 중국 장춘에 애민병원 설립을 시작하며 선교사업 기초를 놓으려 하였으나 중국내 여의치 않은 정치적 상황 등으로 2010 경 떠나게 되었고 다른 시도들도 있었지만 현재는 수녀원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참조사항 있습니다.)

​수녀원  설립연도